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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볼 음료/커피

카페의 하늘을 맑게 하는 사람 / 부제: 카페의 문화요소와 직원의 역할

by 맛볼 2012. 5. 15.

한 두 줄 쓸 만한 꺼리도 찾아지지 않고 따분하게 하품만 나오는 무미건조한 카페가 있는가 하면, 공간을 한 번만 빙 둘러봐도 공책 한바닥은 금방 채울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도 있다.
(카페의 가치 있는 문화 요소는 단지 인테리어가 특이하거나 소품이 잔뜩인 곳 어디에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모처의 이 카페는 후자에 속한다.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운영하고 있는 이 카페는 마당을 하늘이 보이는 실내처럼 활용하기 위해서 투명 재질을 지붕으로 덮어 공간의 정서적 넓이적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지붕 물청소 모습을 몇 번 봤는데 '마당에 앉은 고객들이 언제라도 하늘을 맑게 올려다 볼 수 있게 하려고 자주 청소하는구나'의 인상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커피 추출 뿐만 아니라 벽에 회칠 작업을 하고 합판에 그림도 그리는, 이 카페의 어느 멀티플레이어 직원이 이번에는 높은 투명 지붕에 올라가 청소하고 있는 고난도 활약상을 목격했다.








이 장면에 어느 소설 제목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이 직원이 여기서 저런 일도 하는구나'까지만 생각했는데,
맞은 편에 앉아 에소잔을 홀짝거리며 청소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지인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저 투명한 판이 아크릴이면 무게를 지탱하는 임계점이 넘으면 먼저 그냥 금이 가겠지만, 저게 강화유리라면 금 가는게 아니라 산산조각 나면서 사람이 밑으로 쑥 빠질지도 모르거든." 이러는 거다.

지인의 걱정 어린 견해에 든 생각은, 저 직원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중력 지분은 작년 여름에 비해서 많이 적어졌기 때문에 지붕에 행사할 수 있는 힘도 그만큼 약해진 상황이니까 그 임계점 걱정은 전혀 안해도 된다는 것.
 
주문 받고 서빙 하는 모습 속에서 [군대식으로 다소 각져 보이는 듯 공고하고 다부진 직립 자세와 미니멀한 표정]을 특징할 수 있는 이 직원.

몇 번 본 건 아니지만 내가 만약 카페 문을 열게 된다면 이런 끕의 냥반을 영입해서 카페를 맡겨 일궈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겪은 한) 자발적인 자세로 일 잘하고 접객 마인드도 출중한 고급인력이다.

최근 목격한 이 직원의 응대 사례,
내가 앉은 벽보기 자리 맞은 편 창가 2인 자리에 여성 2명이 와서 착석했다. 그런데 이들은 가방만 들고 있는게 아니라 쇼핑백과 다른 뭐를 한 두개씩 들고 있었는데 이 소지품을 어디에 둬야 하나 망설이는 찰라였다. 2인용으로 세팅해 놓은 옆 자리의 의자를 끌어다 가방을 놓으면 카페 측에 밉보일 수 있으니 그럴 시도는 못하는 심정이다.

그런데 이 직원이 쪼르르 들어오더니 벽보기 자리의 의자를 끌어다 그들에게 주면서 "가방은 여기에 놓으세요~"
다른 카페에서는 겪지 못할 수준의 촘촘한 배려에 쫌 놀랐는지 그들은 보통보다 높은 톤으로 고마운 반응을 보였다.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내실에 자리 잡고 앉는 몇 초 동안 고객의 상황을 파악한 이 직원은 고객들이 가방 두기를 난감해 할 것을 예측하고 얼른 들어 와서 편의 조치(?)의 응대를 제공한 것.

그냥 메뉴판 보여 주고 매뉴얼에 따라 커피 내려 갖다주는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카페라는 상업 서비스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 고객에게 시의 적절하게 응대하는 대처 능력은 매뉴얼과 교육으로 할 수 있는 영역 너머의, 개인의 타고난 통찰력과 감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 카페와 무관한 이야기로 글 마무리.
길게 보면 내 사업에 결정적 이득이 되는 인재인데 잠재된 능력은 전혀 못 보고, 당장 지출되는 임금 중심으로 판단해서 사람을 싸게만 쓰려고 머리 굴리거나, 명절이나 휴가 때 되면 돈 몇 푼 아까워 발발 떨며 오너 마음씀씀이 못하는 쪼잔 작렬로 쓸만한 직원을 곁에 못 잡아 두고 나가게 하는 지인들과 제보사례가 주변에 7명 있다. 거 참 빙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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