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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볼 음료/커피

카페 진상손님 이야기 <1> 진상이라고 너무도 가벼이 분류해버린 어느 샌드위치 손님

by 맛볼 2013. 6. 25.



카페 진상손님 이야기는 카페를 운영/근무하고 있는 분들이 전해주신 육성 사연을 정리해 소개하는 연재물입니다.
본 연재는 카페 문화 선순환의 한 축인 소비자를 잠재적 진상 성향자로서 도매금 의도하는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사연의 특성에 따라 1.구술한 그대로를 옮겨 적거나 2.취지와 사실이 유지되는 범위에서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위 사진은 아래 사연과 전혀 관련 없으며 그냥 샌드위치임.



(사연자가 들려준 사건의 전말과 심정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우리 카페의 메인은 커피 아닌 샌드위치
우리 카페의 샌드위치는 2,700~4,000원이며, 이 메뉴의 존재 이유는 커피를 팔면서 세트로 판매하거나 등 유인 상품으로 역할케 하기 위해서 근처 카페들보다 500~1,000원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샌드위치만 단품 구입은 포장만 가능)

손님들은 샌드위치의 가격대비 실한 내용물에 상당한 만족감을 나타내고, 처음 온 소님들이 이곳을 다시 찾는 이유의 60% 이상은 샌드위치 때문일만큼 카페의 메인은 커피가 아닌 샌드위치가 되는 아이러니를 나는 받아들인다.
샌드위치 하나 열심히 만들어 팔면 이문은 가까스로 1,000원.



 항상 가장 싼 샌드위치만 달랑 구입해가는 어느 손님
처음 방문해서 2,700원 샌드위치를 구입해간 그 손님은 이후 나흘 연속으로 커피 없이 샌드위치만 구입해갔는데, 두 번째 구입 때부터 그분에 대한 견해가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쪼잔하게 커피도 없이 제일 싼 샌드위치만 매일 사고 말이야. 그것도 꼭꼭 카드로 결제하는 꼴 하고는...'
샌드위치만의 매출을 위해서 오븐을 5분 예열해야 하고, 이문도 박한데 그것만 달랑 구입해가는 것에 짜증이 솟아올랐다.

카페 룰 밖의 요구를 하거나 정서적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는 없었으며, 손이 많이 가지만 가격은 가장 싼 메뉴를 여러 번 주문했을 뿐인 지극히 상식적인 손님.

그 분의 구매 행동은 보편 상식에서 진상 요소는 전혀 없었음을 인정하며, 까탈스런 주관적 가치판단에서 나만의 진상이었지만, 그 손님이 얄밉고 쪼잔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죽비로 두들겨 맞는 사건 발생
당장의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손님이 아니고 주문 메뉴에 손 가는 일이 많다는 이유로, 꾸준한 친절함으로 표정은 활짝 웃음(실제 안면근육은 입꼬리만의 가식 웃음)이지만, 마음으로는 그분을 가벼이 여기며 방문을 응대했는데, 정작 쪼잔한 마음은 내 몫이었음을 환기시켜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샌드위치 다섯 번 구입한 다음 방문에서 그 분은 직원 세 명과 방문해서 테이크아웃 음료 14개를 주문하면서 딱 한 마디 하셨다.
(참고로 14잔 주문은 우리 카페에서 보통 4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주문량이며, 인/아웃 가격 동일)

 "항상 친절하셔서..우리 부서 커피 쏘는 일이 있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그 말이 죄스러움에 가까운 미안함으로 비수처럼 내 마음에 꽂혔다.
동시에 잇따른, 경박하기 짝이 없이 주책스러운 "고마운 마음"이 고개를 내밀었고...그 순간부터 나는 '사람이 아니무니다' 였다.
그렇게 손님 취급 않던 마음이 급작 죄스러움과 고마움의 심정을 내놓는, 내 마음의 극과극 돌변이 민망하고 우습기 짝이 없음에.

카페 운영 선배들한테서도 들은 적이 있지만, 내가 변죽이 들끓는 마음으로 손님들을 대하는 당사자가 될지는 몰랐다.

죽비 맞음으로 깨달은 두 가지,

손님 응대의 태도 변화의 계기
손님들이 보여주는 매출의 크기를 차별하지 않고 한 결 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를 절감.

내 안의 적나라한 천박함 재발견
나에게 단시간에 큰 이로움이 발생하는 상황을 만들어준 사실만으로, 최근 일주일 동안 그 손님에게 잔잔하지만 꾸준히 가졌던 경멸의 마음을 순식간에 철회해버린 나의 얍삽함에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애당초 있어 왔으나 타조 머리만 파묻어 숨듯 외면했던, 달다고 삼키고 쓰면 바로 뱉는 나의 천박한 속물근성과 기회주의 재발견.



 감정의 널을 뛰다



[손님이든 지인이든 모든 타인들과의 관계 속 그들에 대한 견해]와 [일이 돌아가는 상황의 좋고 나쁨에 따른 감정]이 수시로 지표면에서 대기권까지 고공 널뛰기하는, 변덕스럽고 요란한 내 마음을 재확인한 상황에 불감하지 않고 수치스러워 못견딤을 보니, 내가 아직은 괴물이 아니라는 안도감(?)도 든다.

(평소에 누구나 그렇지만, 특히 많은 돈과 더불어 체력과 영혼과 시간의 상당량이 투입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카페를 오픈한 사람들은 개업 초기 몇 개월 동안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감정의 천당 지옥 널뛰기가 심할 수 밖에 없다)

이 사건이 아니라도,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 속에서 원래 달달한 무엇이 어느 날 쓰면 '가끔 쓸 수도 있겠지' 하며 진득하게 여기지 않고 호떡 뒤집듯 훼까닥 견해를 달리했던 내 마음의 변덕을 졸업하기는 너무 어렵다.

죽비로 나를 때리신 그 손님은 다시 꾸준히 샌드위치만을 구입해 가고, 나는 그 손님에 대해서 '호'도 '불호'도 판단을 더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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