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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중독>이 말하는 띨벙이 3종: 스마트폰 중독 SNS 노예, 전문가 맹신, 결정장애

by 맛볼 2014. 9. 24.

스마트폰 중독 금단현상, 결정장애, SNS 노예 증상에 관한 책 노력 중독간략 리뷰입니다.

정보 과잉, 스마트폰 중독 부작용, 결정장애 분석서 노력 중독 -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에 관한 고찰

 

 

노력중독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에 관한 고찰

베아트리체 바그너, 에른스트 푀펠 / 2014.09.05 / 율리시즈

 

 

 

 

§ 전문가, 저명한 인간을 맹신하는 띨벙이

검증된 전문가들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많은 프로젝트가 실패하는가? 이것이 전문가 현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이다.

세부 지식에 능통한 사람은 종종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전문가란 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견해만 옳고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작동되어야 한다고 믿는 전문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큰 재앙이 되고 만다.

내 견해와 사고 대신,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판단과 의견에 따라 삶을 결정하고 따르다 보면 나의 창의력과 개성은 힘을 잃는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영역에서 독창적인 사고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전문가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범홍대권 어느 카페,

커피교육 나름 깨작깨작 받은 피플이 카페 차렸고.. 이제 투자한 자금 뽑으려고 커피교육생을 모객하는 안내문을 벽에 붙여 두었는데,

그 옆에는 무슨 커피교육자 과정 수료증, 뭔 바리스타 자격증, 커피전문가 인증서, 뭔그레이더 인증서 류의 종이들이 훈장처럼 줄줄이 붙어 있더라.

그런데 이런 온갖 쯩쯩쯩들이 커피교육 수요 띨벙이들에게 공신력과 끕 어필 레이저를 쏘아대서 그들의 돈을 빼먹는 데는 상당한 특효약.

 

전문가 판가름은 경험한 양이나 세월의 누적량이 아니라, 하늘아래 새로운 관점의 독창성을 지녔는지에 있다. 구태의연한 잡기로 5년 10년 진탕 세월을 보내도 전혀 별볼일 없는 띨벙성 전문가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그런데 그런 띨벙이 전문가에게 쌩돈과 노력을 쏟아 붓는 더띨벙이들.

 

학계든 문화계든 창업컨설팅이든 자기계발이든 차든 커피든 세상 모든 분야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전문종사자가 있다.
(전문가라는 보편어는 말하기도 듣기도 거북살시러워서 방금 급조한 말, 전문종사자로 대체)

 

A. 3,650일 동안 먹고 자고 뿌지작~하는 어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10년 나잇살처럼, 그 세월이 예외 없이 누구나에게 부여하는 경험 누적치, 그 이상의 안목은 가지지 못하는 전문종사자
→ 시간 흐름 동안 반복된 학습으로 수동에 가깝게 체득된(체득한X) 것만 밑천 삼을 뿐, 지능적 응용과 통찰의 능력은 전무한 찐따 유형

B. 대상을 유전자 구조까지 파악하듯 분석하고 찜 쪄먹듯 10년 세월을 보낸, 탁월한 관점+감각+안목+통찰력을 지닌 전문종사자

 

그 사람에 대해 몇년 아닌 몇 개월만 겪어봐도 그가 지닌 세월의 내공 누적물이 A인지 B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구입하려는 전문종사자가 지닌 실력 A인지 B인지 성분을 가릴 줄 아는 안목도 배우는 이가 지닌 실력이며,

전문가를 판단하는 옥석 구분의 실력이 좋으면 시간+노력+돈을 절약할 수 있다.


10년 세월을 각각 차/커피 바닥에서 보낸, 안면 있는 A유형 지인 두 명이 책내고 강의 하고 잡지에 인터뷰가 나기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왕~ 저 후루꾸 냥반이 그 바닥에서 저자, 전문가, 선생으로 먹혀서 득세하고 행세하는구나!' 이런 신통한 마음 가실 날이 없다.

책 냈다 강의 한다 교수라고 해서 모두 진성 끕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닌데도, 웬갖 후루꾸 전문가들이 제 나름 분야에서 사바사바 설렁설렁탕 먹히는 게 세상이며, 야매 꼼수로 평판과 힘을 만들어서 필드에서 굴러먹고 있으며, 또 그 와중에 묵묵한 진성들이 요란한 후루꾸들 사이에 옥석 뒤섞여 그럭저럭 돌아가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

 

 

 

 

§ '스마트폰으로 내 삶은 효율성이 높아졌다' 생각하는데 실상은 두뇌가 퇴화진행형임을 모르는 띨벙이

세상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여러 뉴스나 휴대전화에 남겨진 문자 메시지 등으로 우리를 사정없이 공격하고 관심을 앗아간다. 벨소리와 딩동 소리 혹은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 등이 끊임없이 우리를 에워싼다.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지각하고 반응하려 한다면 그 행동들은 시간을 훔치는 도둑이 된다.

시간 도둑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고 시간에 삼켜지는 지름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바로 그 때문에, 현대의 최신 소통기기들은 새로운 중독 행동을 유발시킨다.

호김심을 충족시키는 대가는 집중력 상실이다. 진짜 하려던 일은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잊혀진다. 이는 곧 일이 끝나면 받을 수 있던 보상도 같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힘든 일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라는 깊은 행복감 대신, 잠시의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당신의 능력은 당신의 생각보다 큽니다. You're more powerful than you think." by Apple
혹세무민하고 개코랑말코 같은 말이 세상에 또 없건만, 띨벙이들 멘탈에는 엿처럼 쩍쩍 달라붙는 낭만적인 긍정&희망 만땅 멘트.
기업은 스마트기기 기능을 그것을 구입한 사람의 능력으로 은근슬쩍 동일시 동기화시키는 이미지광고로 기기를 구입하도록 충동질하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스마트기기의 기능을 자신의 능력으로 개착각한 맹꽈 띨벙이들은, 자신을 성공한 인생 상위 5%레벨로 오판한 나머지, 스마트폰을 <펑하고 나타나는 전지전능한 램프의 거인> 삼아, 인생의 잔존 시간을 긴장과 치열함과 탐구심 없이, 근거없는 능력출중감과 도깨비방망이 득템심 속에서 안일하게 스마트폰 노예로 귀의해서 사실상 무뇌지경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네! 어유~ 그러고보니 나는 완전 능력자잖아? 아! 개뿌듯 소뿌듯.....

 

요즘인들의 삶 속에서 가장 많이 멘탈&신경을 할애하는 신종 분야는?

사람과 사람 사이 심리적 거리 제로의 UHD급 적나라한 마이크로 인간관계 관리를 가능케 해주는 카카오톡.

하늘 아래 새로운 기술을 앞세운 카카오톡은 수많은 띨벙이들에게 편리하고 효율적인 인간감시 툴을 제공하는 댓가로 각자의 1일 정신활동량에서 가장 높은 멘탈 잠식권을 요구했으며(요구라기보다는 조절 못하는 띨벙이들이 멘탈을 카카오톡에 쏟아 부은 것), 띨벙이들은 달콤찝찔 그 맛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자기 멘탈의 최대 지분을 기꺼이 카카오톡에 넘겼다.

카카오톡은 띨벙이들 상호 감시&간섭 체계이면서 관음&피관음 욕망의 해소 기능을 겸비한, 신흥 변종 빅브라더 띨벙이들의 콜라보레이션의 너른 장.

 

지하철에서...

서 있을 때 스마트폰 보는 비율은 반타작 이상 너끈,

서서는 폰 안보고 있다가도 자리 나서 엉디 붙이면 가장 먼저 하는 조건반사 행동은 스맛폰 열어 포탈앱 열거나 카톡 체크하기,

책 읽는 사람은 이제 멸종했으며,

건너편 앉은 7명 몽땅이 스마트폰을 떼로 워십하는 모습은 페이스샵 미샤 50% 세일보다 훨씬 흔하디 흔한 풍경,

이제 스맛 안보는 비주류 희귀한 한반도 인류는 피처폰 사용자이거나 취침하는 사람 정도.

 

궁금할 때 화면 켜 패턴 열어 10초 안에 검색으로 뭐든지 뽑아내는 정보들을 자신이 뇌세포로 체득한 지성과 실력으로 오인하는 띨벙이들.

 

 

 


§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우왕좌왕 인생을 쏠아먹는 결정장애 띨벙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손에 쥔 카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이나 주위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꾸려갈 힘을 갖게 된다.

 

어째서 사람들은 결정하기를 두려워하는가? 매우 간단하다.

결정한다는 것은 주어진 가능성 중에 하나 혹은 여러 개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에서 영웅이 되는 것은,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며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거쳐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온전히 살아갈 수 있으며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저자 말대로 여러 경우의 수를 계속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고 있어서,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으니 적어도 모두 상실은 하지 않았으며 가능성들이 여전히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멘탈 지표면 상의 안심&위안 상태(타조가 모래에 머리만 묻고 숨었다는 꼴)를 유지하려고, 마땅히 결정을 내렸어야 할 시점을 무지無知했거나 외면해서...

우물쭈물 우왕좌왕 죽도밥도 중구난방 무사안일 복지부동 속에서 끽해야 80년 밖에 못 사는 미물의 무색무취 인생은 하릴없이 흘러만 간다.

80년 수명이라지만, 20년째 살고 있는 어느 인생의 실질적 잔존 활황기는 끽해야 30년.

 

저자는 '장애'라고 말했지만,

이건 장애라기보다는, 실력은 없는데 최선안, 차선안, 차차선안 전부를 틀어쥐고 모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무능과 우매한 탐욕의 소치.

 

※ 인용문 출처: 「노력 중독」본문 및 출판사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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