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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땡기는날’은 오직 라면만 판다
정독도서관 맛집 라면땡기는날(이하 ‘라땡’)은 라면을 뚝배기에 조리해서 그릇에 옮겨 담지 않고 끓여 낸 채 그대로 손님에게 갖다 주는, 일명 뚝배기 라면의 창시자이다.
* 관련 글 : 삼청동, 옥석 가리기 -- (9) 라면 땡기는 날
라땡은 삼청동이 ‘제2의 신사동 거리’라는 별칭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기 훨씬 이전, 삼청동으로서의 존재감이 전혀 없던 1998년 정독도서관 앞에 문을 열고 14년째 오직 라면 한 가지만 열심히 팔고 있는 라면 순정파 맛집.
1998년 당시 주고객은 근처의 풍문/덕성여중고 학생들과 정독도서관 이용자들이었고, 삼청동에 상권이 형성된 지금도 여전히 이곳을 찾은 손님들의 많은 비중은 그들이다. 10여 년 전 점심시간에 하굣길에 이곳을 찾던 여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와 주인아주머니와 반가운 재회를 하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다.
라땡이 문을 연지 14년에 이르는 동안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서 라면 한 가지만 팔지 않고 김밥, 순대 같은 다른 분식 메뉴들도 추가했을 만하지만, 주인아주머니가 라면 단일 메뉴만을 고집하는 데에는 ‘라땡은 오직 라면’이라는 전문성을 희석시키지 않으려는 의지와 객단가에 연연하지 않고 라면만 맛있게 만들면 충분히 장사가 된다는 자신감이 있을 것이다. 난 한 놈만 팬다, 라는 마음가짐.
무교동 낙지볶음보다 더 매운 라땡의 짱뽕라면
라땡의 대표 메뉴는 짬뽕 레서피를 라면에 반영해서 무교동 낙지볶음 양념보다 훨씬 매운 강도로 뚝배기에 끓여 낸 짬뽕라면.
# 라땡 뚝배기라면 1단계 - 라면을 뜯어서 뚝배기에 장착하기
# 라땡 뚝배기라면 조리 2단계 - 해물, 파, 양배추 등을 곁들여 얹는다.
짬뽕라면의 이 도발적인 매움의 비결은 마지막으로 첨가되는 새빨간 한 국자의 이 매운장이다.
# 라땡 뚝배기라면 3단계 - 새빨간 매운장 한 국자 듬뿍 넣기
짬뽕라면의 걸죽한 국물은 전분이나 밀가루가 첨가돼 역할을 하는 점도가 아니라 매운장에 아낌없이 들어간 청양고춧가루들이 서로 장력으로 달라붙어 만드는, 정직한 매운 진국의 걸죽함이다.
등 뒤 주방에서 뚝배기가 요란하게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뿐인데도 혀 밑이 뻐근해지며 침샘에서 무언가 퐁퐁 솟아나며 내 몸이 반응하는 이런 모습은 ‘파블로프의 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센 불에 깊이 달궈진 뚝배기의 열기가 만들어내는, 매운 맛 좀 보라는 듯 용암처럼 빨갛게 들들 끓는 보글거림은 화덕을 떠나 내 앞에 와서도 한참을 잦아들 줄을 모른다.
이 뜨겁고 새빨간 보글보글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아주 칼칼하게 날 선 매움이 순식간에 혀를 통로 삼아 등줄기로 목덜미로 퍼져 나가는데, 한기나 공포가 아닌 매움에도 이렇게 오싹할 수 있는 경험은 라땡만이 만들 수 있는 사이드 메뉴랄까?
메뉴에는 설명이 없지만 짬뽕라면에도 매운 강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 강렬한 매움으로 스트레스 해소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분은 ‘아주 맵게요!’를 외치면 된다. 이 매운장 두 국자가 선사하는 각별한 매움으로부터 얻어지는 정신 건강의 효과는 아주 톡톡하지만, 먹은 직후부터 수 시간에 걸쳐서 [소화 계통 이하 기관(즉, 위장과 떵꼬)]에서 느껴질 각종(?) 쓰라림이 기다리고 있음은 각오해야 한다.
* 라면 땡기는 날 총평
시중의 라면 프랜차이즈들이 매출향상이라는 만 원짜리 줍는 유혹에 못 이겨 이런 저런 메뉴를 계속 추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15년 가까이 오직 라면 한 가지만 끓여 파는 라땡의 우직함에 그 흔한 ‘맛집’이라는 말 이상의 찬사를 붙여주지 못함이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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